[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中企와 벤처가 서로를 살린다
2016.06.30
By.관리자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던 일본 기업이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유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15년 혼다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제조하던 바이크를 국내 공장으로 이전했다. 파이오니아는 태국에서 제조하던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국내로 이전했으며, 다이킨은 중국에서 제조하던 에어컨을 국내로 이전했다.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현지 인건비의 상승이다.
과거에 기업들이 앞다퉈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때와 비교하면 일본의 제조 환경은 열악해졌다. 대기업의 제조능력을 뒷받침하는 중소기업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중소기업 주문을 일시에 끊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일감이 없어지고, 사원도 많이 줄어들었다. 미래가 어둡다보니 후계자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도태된 곳도 많다. 예를 들어 도쿄 스미다구에는 1970년대 작은 공장이 1만곳 있었으나 2013년에는 3500곳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서로를 살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벤처는 정보기술(IT)을 이용한 3차원 설계나 3차원 프린터를 다루는 능력은 뛰어나다. 그러나 실제로 제품을 완성하려면 금속을 절단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벤처에는 최종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고 실현하기 위한 제조기술은 없다. 이런 벤처를 살리는 것은 제조기술이 있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인 하마다제작소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심 7800m에서 3차원 영상을 촬영한 기기를 개발했다. 이 기업은 자사 공장을 벤처나 개인 제작자인 메이커스에 개방한다. 연간 4000명 이상이 공장 견학을 오는데 판금이나 프레스 가공 등을 모두 공개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늘 하던 작업이라 달리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제조 경험이 전혀 없는 벤처에는 하나하나가 다 귀중한 경험이다.
어느 벤처가 새로운 발상을 도입한 풍력발전기를 설계했다. 프로펠러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런데 막상 발전기를 만들려고 하니 1000분의 1㎜의 정밀도를 유지하면서 23시간 가공해야만 만들 수 있는 부품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런 부품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경험이 풍부한 중소기업에서 특별히 부품을 만들어주어서 발전기는 형상을 갖추게 됐다.
손목시계를 개발하는 벤처가 있다. 이 기업은 무브먼트 제조와 조립 공정을 중소기업에 위탁한다. 일본의 시계 공장은 2005년부터 거의 다 중국으로 이전했다. 무브먼트를 매월 500만개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던 이 중소기업 역시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벤처와의 협력을 계기로 새로운 자동화설비를 개발했으며, 일본에서의 제조원가를 중국 제품과 거의 비슷하게 맞추었다.
벤처의 아이디어가 중소기업을 살리는 사례도 많다. 1971년 창업해 스프링을 제조하는 어느 중소기업이 있다. 과거에는 자동차 메이커의 하도급을 받았으나 대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중소기업은 벤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제품을 개발했다. 스프링 블록을 조립하면 공룡이나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어느 금형 기업은 문방구를 만들며, 어느 금속가공 기업은 파이프를 이용한 스피커를 만든다. 의료용 보조기구를 만드는 판금성형 기업도 있다. 모두 벤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중소기업과 벤처가 서로 협력해 새로운 제품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도쿄 스미다구에서는 개라지 스미다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공방은 레이저 절단기와 같은 본격적인 제조설비를 갖추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벤처의 아이디어와 중소기업의 기술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한 가지 정도는 잘하는 게 있다. 중소기업과 벤처가 협력해서 서로 잘하는 부분을 연결하면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 대기업만 쳐다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