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상사에게 “No”라 말할 수 있는가
2016.08.09
By.관리자
일본 기업에서 회계부정이 잇달아 발각되고 있다. 2011년에는 카메라 제조기업 올림푸스가 2000억엔의 투자 손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2015년에는 도시바에서 회계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시바의 회계부정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이루어졌는데 사실은 명확하게 부정을 지시한 경영자가 없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받은 사원도 없었다. 성과를 다그치는 경영자와 궁지에 몰린 사원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적자가 184억엔이었으나 이 보고를 받은 경영자는 "이런 숫자는 부끄러워서 공표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말을 들은 사원이 자의적으로 숫자를 조작하여 50억엔 흑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원들이 행한 것은 이익을 부풀리거나 매출을 앞당겨 계상하고 손실계상을 연기하는 등 기본적인 회계원칙을 어기는 방법이었다. 고도의 술수를 쓰지도 않았다.
도시바 사건은 일본 기업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바로 상사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기업문화다. 도시바는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원에게 도전정신을 강요하였다. 도전이라는 명분 아래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각 부서에 지시한다. 해당 부서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경영진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다그친다. 사원은 궁지에 몰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회계숫자를 고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도시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상사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기업문화는 도시바에만 있는 특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에서 종신고용제로 일하면 자연히 상명하복의 문화에 젖는다. 신입사원 때부터 상사에게 복종만 하던 사원은 나중에 스스로가 경영자가 되어도 "No"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No"라는 의견도 포함된다. 상사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원이 기업의 미래를 담보한다.
이런 환경을 배경으로 예술을 기업혁신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각광을 받고 있다. 컨설팅기업인 시그막스시스와 화이트십은 경영자가 가진 열정이나 비전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권한다. 이미 고마쓰, 야후, 아사히카세와 같은 기업의 경영자가 참여하였으며 1만명 이상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제공된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 있지만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당연하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이 과정은 경영자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번에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제는 `일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내용이다. 경영자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잘 나타내는 단어를 몇 개 선택한다. 단어를 색깔로 비유한다면 어떤 것인지도 선택한다. 아무 색깔이나 좋은데 이는 자유로운 발상을 의미한다. 그림은 파스텔로 그린다. 선을 그리고 색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그린다. 사용하는 종이는 바탕색이 12가지 색상이며 하얀 종이는 없다. 그림은 하얀 종이에 그린다는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그림이 완성되면 액자에 넣고 서로 감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주제라도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온다.
상사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암묵적인 이해라는 문화가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생각이다. 혹은, 나 자신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직을 위해서는 이해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암묵적인 이해는 소통이 아니다. 험난한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원의 지혜를 연결해서 활용해야 한다. 경영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경영의 논리와 미술의 감성을 융합하여 기업혁신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노력이다.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