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기술에 경영을 더하면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News

[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대한민국,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국가인가?

2018.05.09

By.관리자

1999년은 불안과 긴장 속에 막을 내렸다. 12월 31일 자정이 될 때까지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함과 동시에 전 세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비관론과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낙관론이다. 두 의견 모두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희망 섞인 추측이 더 컸다.

이름하여 2000년 문제다. 2000년 1월 1일이 되었으나 전 세계에서 컴퓨터 오작동에 의한 사건·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2000년 문제는 인류에게 주요한 교훈을 남겼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인터넷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근거 없는 비판과 희망 섞인 기대가 난무하였을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했던가.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자칭타칭 4차 산업혁명 전문가는 많다. 하지만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아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거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는 과거 유사 사례와 비교해서 미래를 예단한다. 그러나 미래는 예단대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려는 노력이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검증하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다져야 한다. 요즘 지구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국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실험한다.

예를 들어 에스토니아는 e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 e레지던시는 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행하는 디지털 신분증인데 이를 이용하면 국민도 아니고 동국에 살지 않더라도 온라인 에스토니아 회사를 창업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인구 130만명인 소국이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전 세계인을 국민처럼 여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연방국가인 두바이는 인구 303만명인 첨단 도시다. 글로벌 대기업은 없지만 국가 전체를 혁신의 실험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인구 560만명인 싱가포르는 스마트 국가를 목표로 방방곡곡에 센서를 달고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2016년에 세계경제포럼은 139개국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준비도 지수`를 분석하였는데 싱가포르가 가장 높은 지표를 보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구 840만명인 스위스는 가상화폐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특히 추크는 가상화폐의 메카라 할 만하다. 기업 공개는 미국 월가에서 하고 가상화폐 공개는 스위스에서 하라고 광고한다. 이들 국가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적으니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소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는 아무도 소국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하고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초연결 시대답게 문제와 문제는 서로 연결되면서 정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에 윤리와 도덕을 요구하거나, 로봇에 소득세를 부과하고, 가상화폐의 성격을 정하고, 센서가 취득한 데이터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을 정하는 등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문제와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되니 전체 최적화가 점점 어려워진다.

문제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국가는 선진국이고 남의 정의를 따라가는 국가는 후진국이다. 문제를 해결한 과실은 선진국이 독식할 것이 틀림없다. 미래는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라 했다. 내가 어느 곳으로 갈지는 나 스스로 정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출처 바로가기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292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