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창업자의 피는 끓는다
2018.06.14
By.관리자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미래에는 생활방식이 크게 진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기술이 보급되면 모든 금융거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 식품은 농장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화재나 사고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대응 방법을 제시한다.
환자의 사진만 보고도 어떤 질병인지 알아내고 최적의 처방을 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 정착되면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모든 데이터를 연결시키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가상현실은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허물어 시공을 초월한 경험을 제공한다. 로봇은 인간을 육체노동에서 해방시킨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존재하던 일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한다면 인간의 일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안에 1575만명의 일자리가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측한다. 어느 기관의 조사를 보더라도 현재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예측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일을 하는 목적이 반드시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 자존감을 느끼고 사회의 일원이라는 존재감을 자각한다.
4차 산업혁명의 양면성을 생각하면 창업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진화한 생활방식에 어울리는 새로운 일이 생겨서 창업할 수도 있고 지금의 일자리가 사라져서 창업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창업을 지원하는 제도와 자금이 풍부하게 마련돼 있다. 거의 모든 대학이나 지방정부에는 창업자를 위한 시설도 마련돼 있고 교육 과정도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기술, 재무, 인사, 영업 등을 가르치는 과목도 다양하며 실전연습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만한 스타트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환경이 갖춰졌는데 무엇이 부족한 걸까?
창업자의 심장이다. 창업자에게는 두뇌도 중요하고 손과 발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심장이다. 두뇌는 사업모델이고 손과 발은 실행 능력이다. 심장은 좋은 일을 한다는 신념이다. 좋은 일이란 내가 좋고, 가족이 좋아하며,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내가 가진 기술로 이 세상을 좋게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창업자에게는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뜨거운 심장이 있다. 뜨거운 심장에서 끓는 피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끓는 피야말로 창업의 진정한 에너지다. 소설가 민태원은 자신의 수필 `청춘예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려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는 창업자의 노래이기도 하다. 창업자는 밤새워 일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피가 끓기 때문이다. 아무리 창업 교육을 하고 자금 지원을 하더라도 창업자의 피가 끓지 않는다면 그 창업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피가 끓는 창업자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좋게 만들까 궁리한다. 조급해하지 않으며 시간을 길게 본다. 한눈을 팔지 않고 매일 정진한다. 현란한 단어로 투자자를 모으기 이전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부보조금을 획득하려고 잔꾀를 부리기보다 자립을 위한 방법을 궁리한다.
성공의 기준을 시가총액이 아니라 사회공헌으로 판단하며 고객에게 사랑받는 기업을 목표로 한다.
미래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창업은 여전히 경제 발전의 주요한 불쏘시개이며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자금과 교육으로 창업을 지원하기보다 창업자의 심장에 불을 지르는 게 먼저다. 창업자의 피가 끓어야 한다.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출처 바로가기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37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