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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경영을 더하면 새로운 가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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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배려는 관두고 형식이나 지켜주소

2018.08.22

By.관리자

서비스 기업에 신기술 도입이 활발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다. 기업은 고객이 지금 어디 있는지 파악한다. 스마트폰에 있는 GPS 기능을 이용하거나 사이트에 접속한 로그를 분석해 고객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도 수집한다.

고객이 무엇을 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감시한다. 음악을 들었다면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분석한다. 상품을 구입했다면 무엇을 구입했는지는 물론이고 어떤 상품을 뒤적거렸는지, 어느 정도 시간을 끌며 망설였는지도 파악하고 이유를 분석한다. 이 고객은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할지 미래를 예측한다. 정말로 그렇게 할 확률은 몇 %인지도 계산한다. 데이터가 쌓여가니 인공지능을 사용하기가 점점 좋아진다. 이제는 나도 모르게 내 스마트폰이 사진을 찍고 대화를 녹음해도 놀랍지 않다. 내가 언제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먹고, 결제는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소화는 제대로 시키고 있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기업이 수집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이미 이런 기술이 있다고 보는 이유도 있다. 지금은 기술이 없어도 머지않은 미래에 기술이 개발되고 응용되리라 믿는 이유도 있다.

기업은 신기술에 관심이 많다. 블록체인이나 핀테크도 관심 분야다. 로봇에도 관심이 있고 자율주행에도 관심이 있다. 드론을 사업에 어떻게 활용할지도 궁금하다. 서비스업은 어느 업종보다 치열한 연구개발업이다. 연구하고 개발하고 그 결과를 즉시 사업 모델에 반영해야 한다. 기업이 신기술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다. 상품을 팔고 서비스를 팔아야 기업이 살기 때문이다.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가 되다 보니 웬만한 상품이나 어지간한 서비스에는 고객이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에 대한 맞춤형 대응을 하고 싶어한다. 고객에게 경험을 선사하고 가치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맞춤형 대응이 되지 않으면 경험이나 가치 역시 진부하게 들린다고 여긴다. 이런 동향만 생각하면 고객은 기업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형식도 지키지 않는 기업이 많다. 형식이란 기업과 고객이 정한 암묵적·명시적 규범이다. 인터넷에서 부동산을 한번 검색하면 화면에는 계속해서 부동산 소개가 뜨고 막상 전화를 걸어보면 대부분 허위 매물이다. 휴대폰이든 보장보험이든 계약할 때에는 전화 한 통에 금방 진행되지만 해약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전화통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문자를 주고받는 건 좋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광고 문자에 전화통에 불이 난다. 늦은 시간이나 궂은 날씨에는 아무리 앱을 눌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면 온갖 소프트웨어를 다운해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는 걸레가 된다. 식당에 가면 입구에 전시한 음식모형과 실제 음식이 다르고 주문한 순서와 음식 나오는 순서가 다르다. 포털에는 가치를 이해하기 힘든 뉴스가 앞줄에 놓여 있다. 도대체 어떤 신기술이 고객을 어떻게 위한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고객을 위한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은 고객을 배려하기 위해 신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스스로만 배려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끊임없이 신기술을 적용해야만 고객을 배려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세부에 있다. 고객이 원하는 건 엄청난 배려가 아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서비스를 원한다. 신기술을 적용하는 노력이야말로 고객을 배려하는 경영이라고 말하지 말라. 기업은 신기술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고 사회에 통용되는 가치도 제공할 수 있다. 굳이 개인 맞춤형일 필요도 없다. 형식을 지키면서 고객을 배려하면 금상첨화겠지만 형식도 지키지 않으면서 배려라는 용어만 앞세우면 안된다.

그러니 배려는 관두고 형식이나 지켜주소. 암묵적으로 정한 규범은 물론이고 기업이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최소한의 명시적 규범이라도 제발 지켜주소.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출처 바로가기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525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