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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규제개혁 큰 그림부터 그려놓고 보자

2018.10.04

By.관리자

국가는 규제를 만들고 국민은 규제를 받는다. 규제가 있으면 권리는 제한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국민은 규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규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방관자 입장인 국민이라도 어느 시점에는 거의 틀림없이 당사자로 변한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모델을 구상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여럿 융합한 제품을 개발했을 때다.

당사자가 되는 이유는 `할 수 있다고 정한 내용만 할 수 있다`는 규제 때문이다. 포지티브 규제는 법에 규정된 내용만 합법이고 나머지는 불법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기술 융합 제품이라면 당연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생부터 불법이다. 이런 이유로 창업가는 규제야말로 혁신을 막는 최대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규제는 완화되거나 폐지될 숙명인지 대통령도 장관도 규제개혁을 외친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저런 규제를 없앴다거나 완화했다고 발표한다. 효과가 매우 크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 입장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게 효과가 크다면 지금까지 왜 규제를 없애지 않았을까? 나쁜 규제를 이제야 없앴다면 이는 자랑할 일이 아니다. 너무 늦었다며 사과를 해야 한다.

규제는 마치 얽히고설킨 넝쿨과 같다. 하나의 규제는 다른 규제와 관련되며 여기에 또 다른 규제가 관련된다. 우리나라 규제의 전체 모습을 빠짐없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혁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규제에는 두 가지 가시화가 필요하다. 혁신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실현할 수 있다.

첫째, 규제의 구도를 가시화한다. 규제맵으로 전체를 조감한다. 특정한 사업을 입력하면 이를 중심으로 어떤 규제가 있는지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가 규제맵이다. 규제맵에서 사업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지정하면 두 점을 이어주는 몇 개의 길이 나오고 각 길에는 어떤 갈림길이 있는지, 어떤 신호등이 있는지 알려준다. 이 길로 가면 이런 규제에 해당하고, 저 길로 가면 저런 규제에 해당한다는 분기점이 규제의 갈림길이다. 사업을 계속 진행하면 어떤 규제에 해당하는지는 규제 신호등이 알려준다. 지금까지 없던 사업모델을 구상한 창업가나 기술 융합 제품을 발명한 개발자라면 규제맵을 보면서 자신의 사업이나 제품이 어떤 규제를 받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도저히 규제를 피할 길이 없다면 일찌감치 사업모델을 바꾸거나 아예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사업을 진행하다 규제로 인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보다는 자원의 손실이 훨씬 적다. 물론 혁신은 완성되지 않는다.

둘째, 규제의 의도를 가시화한다. 어떤 규제라도 이를 만든 기관이 있고 적용받는 국민이 있다. 규제를 만든 기관은 왜 이런 규제를 만들었는지 의도를 밝힌다. 이런 규제가 왜 있는지, 왜 안 없애는지, 왜 못 없애는지 설명 역시 규제를 만든 기관이 해야 한다. 국민은 어떤 입장인가에 따라 같은 규제를 다르게 평가한다. 이런 규제는 없애야 한다는 국민도 있고 없애면 안된다는 국민도 있다. 이들 역시 각자의 입장과 의도를 명확하게 밝힌다. 규제가 없는 영역도 대상이 된다. 이러이러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도 있고 만들면 안된다는 국민도 있다. 같은 규제를 보면서도 평가는 백인백색이겠지만 각자의 입장과 의도를 명확하게 밝힌다. 모든 의도는 공개돼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존폐 의견을 주장하지 못한다면 이런 규제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규제를 몇 건 없앴다거나 이만큼 완화했다면서 숫자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혁신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규제를 만든 기관과 다양한 입장의 국민이 규제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도를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규제의 실행은 엄격하더라도 규제를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과정은 얼마든지 슬기롭게 할 수 있다. 규제는 있어도 리스크, 없어도 리스크다.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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