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고객과 기업의 동반성장
2019.02.27
By.관리자
올해도 변함없이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거라고 한다. 장기 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언제 어느 시대나 기업의 장래는 불투명하다. 10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이 몇 개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만한 교훈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기술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이라 해서 수없이 많은 기술이 연일 소개되고 있으니 기업이 얼마나 초조한 심정일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인공지능, 블록체인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만 하는 현실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을 쳐다봐야 한다. 기술 개발은 기업 생존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술을 개발해서 고객 요구를 충족시켜주겠다고 말하지만 이런 자세는 기업이 고객보다 위에 있다는 자세다. 어떤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는 기업보다 고객이 훨씬 더 잘 안다. 평소에 느끼는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창조해 고객에게 제안한다. 고객은 기업이 제안한 가치를 경험하고 고객끼리 공유하면서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기업에 역으로 제안한다. 대개 기업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치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고객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공유하고 역으로 제안하는 가치 사이클이 돌아야 한다. 기술은 고객이 참여하는 가치 사이클의 윤활유에 불과하다. 기업이 고객과 함께 가치를 창조하려면 주의할 점이 있다. 고객은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효과적인 약은 가장 강력한 독이다. 강한 독일수록 약간만 처방을 잘못해도 치사량이 된다. 기업이 고객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고객은 기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고객을 약으로 쓸지 독으로 쓸지는 기업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처방은 고객과 기업의 동반성장이다. 고객은 기업이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야단치면서 성장한다. 기업은 고객이 고마우면 감사하고 잘못하면 지적하면서 성장한다.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성장이다. 동반성장에는 단계가 있다. 먼저 미객(未客)을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객은 우리 고객도 아니지만 경쟁사 고객도 아닌 사람이다. 예를 들어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게임업계의 미객이다. 기업과 상품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사용하지도 않는 미객을 일단 우리 업계로 끌어들여야 한다. 타 업계와의 경쟁이다.
집객(集客)은 기업이 고객에게 손짓하는 단계다. 기업의 손짓에 고객이 반응하고 모여들도록 기업은 끊임없이 고객에게 흥미와 호기심을 제공한다. 경쟁사보다 가격이 싸거나 배송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업계 내 경쟁이다. 접객(接客)은 기업을 찾은 고객에게 재미와 경험을 제공하는 단계다. 기업은 고객 불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가치를 제안한다. 기업 내 경쟁이다.
직객(職客)은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을 홍보대사, 팬클럽, 커뮤니티라는 명목으로 고객이 나눠서 실행하는 단계다. 고객은 마치 기업의 직책을 가지고 움직이는 듯이 보이지만 이는 기업이 요청해서가 아니다. 명분이 있으면 고객은 자발적으로 직책을 수행한다. 기업과 고객 구분이 애매해지고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가는 단계다. 기업이 어떤 기술을 왜 개발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고객이 함께한다. 고객은 열정적으로 다른 고객에게 상품을 소개하며 다른 고객을 끌어온다. 기업과 고객은 서로 신뢰하며 때로는 주객이 전도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고객은 기업에 가장 강력한 약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독이 되는 단계다.
누가 더 기업을 위하는지 고객끼리 경쟁한다.
기업이 아무리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품과 서비스에 활용하더라도 대부분 고객은 전혀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고객 관심을 끌고 고객에게 사랑받을지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고객과 기업의 동반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출처 바로가기 :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118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