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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벽에 키 재기 (윤태성 교수)

2012.11.20

By.관리자

[매경춘추] 벽에 키 재기 (윤태성 교수)

누구나 어릴 때 벽에다 키를 잰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고 싶어서다. 아이들은 머리 위에 단단하고 평평한 물건을 올려놓고 수평을 맞춘 다음에 그 높이에 맞추어서 벽에다 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옆에다 날짜를 적는다.

영화를 보면, 오래된 옛집을 방문한 주인공이 벽을 쳐다보다가 벽에 그어져 있는 비뚤비뚤한 몇 개의 선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참 동안 과거를 회상한다. 영상은 흐릿하게 바뀌면서 과거의 한 장면이 천천히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어디선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놀이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벽에다 키 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잴 때마다 키가 커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키를 쟀을 때보다 현재 얼마나 더 컸는지에 따라 많이 즐겁기도 하고 조금 즐겁기도 하다. 아이가 벽에다 키를 잴 때의 비교 상대는 과거의 자신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서부터 더 이상 벽에다 키를 재지 않는다. 왜 일까? 키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부터 아이들의 키는 절대치에서 상대치로 변한다. 키가 크거나 작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상대적인 표현이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키가 크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 아이들이 벽에다 키를 잴 때에는 스스로와 비교하니까 즐거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키를 비교하면서부터 나의 키는 상대적인 의미가 되어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나보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누구라도 불행하게 된다. 설사 잠시 동안 행복하다고 느끼더라도 곧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다. 비교하는 인생은 고달프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교하는 인생은 나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단, 비교하는 대상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혹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와 나의 비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냈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약간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다. 오늘 하루 내 키가 약간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매일 가질 수 있다면 비교는 행복의 씨앗이 된다.

출처: http://news.mk.co.kr/column/view.php?sc=30500041&cm=_%BB%E7%BC%B3%A1%A4%C4%AE%B7%B3&year=2012&no=764399&selFlag=&relatedcode=&wonNo=&s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