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인사이드칼럼] 기술전쟁에도 '최종병기'는 있다
2020.11.11
By.관리자
과거에는 군산(軍産) 복합체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면 우선 군사 목적으로 사용했다. 증기기관은 전함에, 엔진은 전차와 전투기에 사용됐다. 기업은 일부 기술을 상품에 활용하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도 기술은 군사 목적이 중요하다. 인터넷은 레이더와 미사일에 사용되고 인공지능은 폭탄 드론과 살인 로봇에 사용할 수 있다.
국가가 기술개발을 주도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기업 중심으로 진행한다. 기업은 경제 논리를 바탕으로 국제 규모의 협업을 하면서 기술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국가가 다시 기술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기술은 국가안보의 초석이라는 명분과 함께 국가가 기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연구비 배분과 규제라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가가 명령하면 기업은 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을 양대 축으로 하는 기술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기술전쟁은 조달에서 시작한다. 모든 기술을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우리나라 역시 전 세계에서 기술을 조달하지만 기술전쟁으로 인해 조달 방식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어떤 기술을 어느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지는 기업의 경제 논리만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두 가지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첫째, 특허로 권리를 확보한다. 지식재산을 특허 등록하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우리나라는 먹고살기 위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제조업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기술 입국은 빛이 바래고 관심에서 사라졌다. 시대가 다시 바뀐 지금이야말로 특허에 기반한 기술 입국이 절대로 필요하다. 과거에는 외국 기술을 베끼거나 돈을 주고 사왔지만 이제부터는 특허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기술전쟁이 치열해지면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기술이 많아진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보유한 특허만으로는 기술을 완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협상이 가능하다.
특허는 돈이 되어야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나중 이야기다. 어떤 특허가 얼마나 돈이 될지는 평가하는 시점에 따라 다르다. 특허를 출원할 시점에는 이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경제효과를 창출할지 알기 어렵다. 특허는 수량을 중시해야 한다. 많은 특허 속에 귀한 특허가 있기 마련이다. 기술전쟁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유지하고 싶다면 기술의 경제효과를 추측하기 전에 먼저 특허를 등록해야 한다.
둘째, 국내 생태계를 키운다. 기술이 복잡하고 연구 주제가 거대해지면서 한 나라에서 모든 기술을 개발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우리나라 역시 국제 공동연구를 많이 하는데 재료과학도 그중 하나다. 성과는 우리나라 대학의 세계 순위에도 반영된다. 영국의 고등교육평가기관(QS)이 발표한 전공별 세계 대학순위에서 카이스트는 재료과학 부문서 2019년 세계 17위를 기록했다. 이런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태계가 너무 약하다 보니 기술과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시장을 만들지 못하면 새롭게 발명된 기술이 능력을 과시하지 못한다. 기술을 사용한 상품을 소개할 기회도 없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선보일 기회도 없다.
전 세계를 당사자로 하는 기술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살아갈 방법은 가장 먼저 특허와 생태계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비결도 아니고 깊이 숨겨둔 비책도 아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기술 분쟁이 작은 전투라면 기상천외한 방법이나 임기응변으로도 이길 수 있다. 오래가는 전쟁이라면 기본에 충실해야만 지지 않는다. 기술전쟁에서 우리만 모르는 문제도 없고 우리만 모르는 답도 없다.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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