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평범한 벤처를 위한 경영 융합 플랫폼
2013.03.04
By.관리자
우리 벤처의 대부분은 소기업… 어렵게 기술로 제품 만들어도 판매와 영업에서 난관 부딪혀
여러 벤처의 비즈니스를 묶어 네트워크 효과 창출 기대하는 새로운 벤처 지원 정책 필요해
우리가 벤처를 말할 때 주로 예로 드는 것은 애플·구글·페이스북과 같은 미국 사례다. 그러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수퍼 벤처가 탄생하지 않는지 한탄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수퍼 벤처가 있다면 크게 환영하고 반길 일이다. 하지만 먼저 벤처가 성장하는 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술 벤처라면 보유 기술을 사업화해서 제품을 만든다. 기술 사업화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몇 년 동안 제품을 개발하기도 하며 전세 보증금을 빼고 친척들에게서 돈을 빌려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기술 사업화는 벤처가 맞이하는 첫 관문이다. 기술이 있다고 제품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품이란 고객이 기술을 구매하는 형태이거나 단위다. 고객은 자기 회사의 사업을 위해서 제품을 구매한다. 그러므로 기술을 어떻게 제품으로 연결할지는 고객의 비즈니스를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윤태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벤처가 기술 사업화에 실패하는 것은 제품 단위를 잘못 정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경영학에서는 포지셔닝(positioning)·타기팅(targeting) 같은 개념을 말하지만 벤처에서 이런 개념을 적용하면서 제품을 개발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벤처는 대부분 시장조사 역량이 부족하고 파괴적 혁신을 유발하는 신제품은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포지셔닝과 타기팅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단 자기 기술을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제품이 탄생하면 일차 관문을 통과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벤처에 시련의 시기가 된다. 어떤 기업도 벤처의 제품을 구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명 벤처가 개발한 제품을 선뜻 비즈니스에 이용하려는 기업은 없다. 설사 그 제품 기능이 훌륭하다고 생각돼도 사용하던 기존 제품을 버리고 벤처가 개발한 제품으로 바꾸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고객이 될 만한 기업이 벤처의 제품을 구매해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누구라도 기업에 위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수퍼 벤처라면 기술 사업화로 제품이 나오면 즉시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고객이 그 제품을 구입하려고 줄을 서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찬양하는 기사를 실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벤처는 평범하고 조그만 소기업이다. 대표 한 명만 있는 벤처도 있다. 이런 벤처에서 아무리 파괴적 혁신을 하여도 그를 알아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기업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수퍼 벤처의 탄생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평범한 벤처가 성장할 수 있을까이다.
이를 위해서는 벤처들을 한군데로 모아서 한 집단으로 경영을 융합해야 한다. 경영 융합이란 커다란 가상 기업이 하나 있고, 그 내부에 많은 벤처가 있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경영 융합 플랫폼이라고 한다. 플랫폼에서는 많은 벤처가 느슨한 네트워크 구조로 연결된다. 각 벤처가 기술 사업화와 비즈니스를 하면서 동시에 안건별로 여러 벤처가 한 비즈니스 단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플랫폼 전략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지금까지 개별 벤처를 지원하던 정책에서 진일보해서 기술 사업화에 성공한 벤처들을 네트워크로 묶어야 한다. 네트워크로 묶는 최대 장점은 네트워크 효과 창출에 있다. 이는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3도 되고 4도 되는 효과를 말한다. 작은 막대기가 하나면 쉽게 부러진다. 그러나 두 개, 세 개를 묶으면 어지간한 힘으로도 부러지지 않는다. 이제 벤처 정책은 개별 지원에서 그룹 지원으로 진화해야 한다. 벤처 정책은 수퍼 벤처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에서 평범한 벤처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성장시키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3/2013030301416.html?gnb_opi_opi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