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교수- 한국에서 `혁신의 힌트` 찾은 日기업
2015.05.19
By.관리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일본의 곤고구미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유중광이 578년 설립했으니 올해로 1437년이 되었으며 현재는 40대손이 활약하고 있다. 32대손은 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16가지 덕목을 1810년경에 남겼는데, 특히 독서와 주산은 기술기업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므로 습득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신사를 짓거나 보수할 때에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의 결을 이용해 가공하고 조립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 필요한 기술은 도면이나 사양서와 같은 문서로 명문화해서 남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대에서 후대로 암묵적으로 전수할 수밖에 없다. 곤고구미가 작업에 참여한 신사는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혁신적인 건축물로 일본인은 물론 일본을 찾는 외국인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곤고구미는 기술과 경영의 조화를 강조한 혁신의 원조라 할 만하다. 한국에서 혁신의 힌트를 찾은 일본 기업 중에는 진스라는 기업도 있다. 이 기업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은 안경을 판매하고 있는데 전국의 280여 점포에서 연간 550만개 이상 판매한다. 이 기업의 차별화 요소는 상품의 다양성과 저렴한 가격이다. 1200개 이상의 프레임을 보유하며 1만엔 이하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다. 고객이 매장을 방문해 프레임과 렌즈를 선택하면 30분 후에 고객에게 완성된 제품을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안경 가공 자동화설비를 개발해 10분이면 안경 제작이 완성되도록 했다. 이는 안경 업계에서 보기 드문 혁신 사례다.
그런데 이 기업의 창업자는 "혁신의 힌트는 서울의 남대문시장에 있다"고 말한다. 관광차 남대문시장에 들렀는데 우연히 안경점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
15분에 제작하고 가격은 3000엔이라는 내용이다. 제대로 된 제품을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주문을 해보았더니 전혀 문제가 없는 안경이 완성됐다.
한국에서 빨리빨리 문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그는 왜 일본에서는 가격이 열 배인 안경을 며칠이 걸려야만 완성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 결과 유통이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각 점포에 렌즈를 다량 보관함으로써 30분 완성을 실현한 것이다. 지금은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는데 역시 빠른 속도와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혁신 사례도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전 세계 미식가의 바이블과 같다. 손님으로 가장한 평가원이 식당을 여러 번 방문해서 음식의 맛과 분위기, 가격, 서비스 등의 항목을 확인한 후에 좋은 식당에는 별을 부여한다.
별 3개가 최고이지만 1개만 받아도 최고의 식당으로 찬사를 받는다. 한식당은 2012년에 처음으로 미슐랭 가이드에 등장했다. 도쿄의 한식당인 모란봉이 별 2개를 받았으며, 센노하나와 마쓰노미가 각각 별 1개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세 곳 모두 요리사는 일본인이다. 낯선 한식에 대해서 궁리하고 혁신한 결과 세계적인 식당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이를 평가한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세 곳 모두에 공로패를 수여했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공로다.
위 사례는 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혁신의 힌트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혁신의 힌트를 찾으려고 멀리 외국 사례를 분석할 때 진정한 기업가(起業家)는 오히려 우리의 사례를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익숙한 활동에서 혁신의 힌트를 얻는다.
둘째, 혁신의 힌트를 찾으려면 이방인(異邦人)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조직의 문화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혁신의 힌트가 눈앞에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다른 업종(異業種)을 깊이 관찰해 혁신의 힌트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