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윤태성 교수 – 일본 기업들의 현장중심 경영
2015.08.05
By.관리자
일본 기업은 현장, 현물, 현상을 중시한다. 현장은 실제로 문제가 발생한 장소, 현물은 문제를 일으킨 주체, 현상은 문제에서 관찰된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기업규모 성장과 해외 진출 확대로 인해 현장의 중요성은 본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본사에서 지휘하고 의사 결정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본사와 현장이 대립하고 마찰하면서 현장의 권한이 축소되고 현장에서 활기가 사라진 기업이 늘어났다.
그러나 역시 현장이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이를 실행하는 기업이 최근에 많이 늘어나고 있다. 현장에서 기술자들이 재미있고 즐겁게 일하며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시나리오다.
호리바제작소는 분석계측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다. 창업자인 호리바가 교토대 재학 중인 1945년에 만든 기업이니 일본 최초의 대학발 벤처인 셈이다. 호리바제작소는 사원들이 지속적으로 공부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 기업은 지식보다 오히려 신명나게 일하는 것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래서 기업의 사훈 역시 재미있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다.
파나소닉은 1984년에 영업이익 5757억엔을 달성하면서 일본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국민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오면서 최근에는 일본의 경기침체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기업이 되었다. 올 4월에 파나소닉은 향후 4년간 1조엔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투자하는 분야는 기업 인수·합병, 공장 건설, 연구개발 등 다양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지는 현장의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한다. 파나소닉이 부활하려면 현장의 투쟁심을 끌어내어 현장에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매출의 4%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는데 2015년에는 1조엔을 돌파했다. 도요타는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 폭스바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기술을 다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쓰다와 제휴하기로 했다. 도요타에 비하면 마쓰다는 매우 작은 기업이다. 제휴하는 분야는 특별히 정하지 않았지만 마쓰다의 엔진기술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요타가 진정 원하는 것은 마쓰다의 도전정신이라고 한다. 자동차에 관한 마쓰다의 도전정신은 어느 기업에도 지지 않으며 일본의 제조기업 중에서도 한층 특별하다고 평가받는다.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현장의 도전정신이 많이 희박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도요타로서는 마쓰다와의 제휴를 통해 현장에서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1946년 설립됐으며 올해부터 소형 비즈니스 제트기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장은 모두 기술자 출신이 맡았는데 역대 사장은 모두 엔진이나 자동차의 개발 경험이 있다. 이번에 개발한 제트기 역시 현장의 기술자가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 매진해 상품으로 실현한 것이다. 대부분의 제트기는 엔진이 동체에 부착되어 있는 데 비해 혼다의 제트기는 날개 위에 엔진을 부착한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속력이 높아지면 공기저항이 5% 정도 낮아지고 그 결과 최대 17%의 연비 향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은 자나 깨나 제트기만 생각하던 개발자가 어느 날 꿈에서 본 생각을 바탕으로 설계했으며 이후 수많은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제트기의 부품이 70만점에 이르기 때문에 부품을 원활하게 제조하고 공급하기 위해서 재팬 에어로 네트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여기에는 기술력이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혼다의 제트기를 계기로 중소기업 현장의 기술력을 엮어서 항공기 시장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매일경제 15-08-03